서론: 교토를 뒤로하고 나라로
일본 간사이 지방 여행의 세 번째 날, 교토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기차로 약 45분 거리에 있는 나라(奈良)로 향했습니다. 710년부터 784년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는 일본 역사의 살아있는 박물관과도 같은 곳입니다. 수많은 세계문화유산이 모여있는 작은 도시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첫째 날: 나라 공원과 사슴들과의 만남
나라에 도착한 첫날, 가장 먼저 나라 공원(奈良公園)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약 1,200여 마리의 사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일본 신토이즘에서 사슴은 신의 사자로 여겨져 예로부터 신성한 동물로 보호받아 왔다고 합니다.
공원 입구에서 '사슴 센베이(鹿せんべい)'라 불리는 사슴용 쿠키를 구입했습니다. 가격은 200엔. 쿠키를 손에 들자마자 수십 마리의 사슴들이 몰려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일본인 가이드가 알려준 대로, 사슴에게 먹이를 주기 전에 쿠키를 들고 가볍게 목례를 하니 사슴도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이런 문화적 교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행 팁: 사슴들은 대체로 온순하지만, 먹이를 보면 적극적으로 다가옵니다. 가방이나 옷에 음식물이 있으면 물거나 뒤지려고 할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점심은 공원 근처 '나라 맛집'이라는 작은 식당에서 '가키노하즈시(柿の葉寿司)'를 맛보았습니다. 감잎으로 싸서 숙성시킨 초밥으로, 나라 지역의 전통 음식입니다. 상큼한 감잎 향과 어우러진 신선한 생선의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오후에는 도다이지(東大寺)로 향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 중 하나인 이곳에는 높이 15미터의 거대한 청동 대불(盧舎那仏)이 있습니다. 8세기에 건립된 이 대불 앞에 서니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둘째 날: 호류지와 역사 탐방
둘째 날은 나라에서 약간 떨어진 호류지(法隆寺)를 방문했습니다. 607년에 건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백제 장인들의 기술로 지어졌다는 설이 있어 한국인으로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호류지의 5층 목탑과 금당은 일본 고대 건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특히 금당 내부의 불상들은 아스카 시대의 독특한 미학을 담고 있었습니다. 국보급 문화재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감동적이었습니다.
점심은 호류지 근처의 '아스카 테이(飛鳥亭)'에서 '차즈케(茶漬け)'를 먹었습니다. 따뜻한 차를 밥에 부어 먹는 간단한 음식이지만, 소박하고 정갈한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후에는 나라 국립 박물관으로 돌아와 일본 불교 미술의 보고를 감상했습니다. 쇼소인(正倉院)의 보물들과 불교 조각품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시되어 있어, 일본 문화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저녁은 나라마치(奈良町)의 골목길을 산책하며 보냈습니다. 에도 시대의 상가와 주택이 보존된 이 지역은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작은 공예품 가게에서 사슴 모양의 기념품을 구입했습니다.
셋째 날: 야쿠시지와 이소노카미 신궁
마지막 날은 나라 동쪽에 위치한 야쿠시지(薬師寺)를 방문했습니다. 680년에 세워진 이 사원은 두 개의 대칭적인 탑이 특징인데, 불교 철학의 균형과 조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약사여래불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어 예로부터 병치료와 건강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고 합니다.
이후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으로 향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 중 하나로, 신토이즘의 순수한 형태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이곳은 일본 최초의 창고시설인 '토노쿠라(外蔵)'가 있는 곳으로, 고대 일본의 중요한 무기와 보물을 보관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점심은 신사 근처 '와라비모치야(わらび餅屋)'에서 와라비모치를 맛보았습니다. 고사리 전분으로 만든 이 전통 디저트는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콩가루, 달콤한 흑설탕 시럽의 조화가 일품이었습니다.
오후에는 가사하라 신궁(笠原神社)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규모는 작지만 지역 주민들의 신앙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관광객이 거의 없어 고요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 고대 일본의 숨결을 느끼며
3일간의 나라 여행은 일본의 고대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교토나 오사카처럼 화려하거나 번화하지는 않지만, 나라만의 고요하고 깊은 매력이 있었습니다. 사슴들과의 교감, 천년이 넘는 목조 건물들, 그리고 정갈한 음식까지... 모든 것이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하루 일정으로도 주요 명소를 둘러볼 수 있지만, 여유롭게 2-3일 정도 머물면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는 것을 추천합니다. 특히 아침 일찍 또는 저녁 늦게 관광객이 적은 시간에 나라 공원과 사슴들을 만나보세요. 훨씬 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숙소 팁: 저는 나라역 근처의 '료칸 아스카(旅館飛鳥)'에 머물렀습니다. 전통 료칸 스타일에 현대적 편의시설을 갖춘 곳으로, 아침에 나오는 가이세키 요리가 정말 훌륭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라는 걸어서 둘러보기 좋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주요 명소들 사이의 거리가 꽤 있으니 하루 패스 버스 티켓을 구입하거나 자전거를 렌트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본의 첫 수도였던 나라에서 시간 여행을 즐기고 싶으신 분들께 이 아름다운 도시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다음에는 더 깊이 나라의 숨은 명소들을 탐방하고 싶습니다.